이번 선교를 한 단어로 정리하라고 하면 나는 기다림이라고 하겠습니다.
선교를 준비하는 과정과 선교지에서 진행은 기다림의 연속이였습니다.
작년의 태국으로 선교를 갔었는데 약 가는데만
약 20시간 정도 소요가 됬는데 올해 콜롬비아 가는데 약 15시간 정도가 소요 됬습니다.
새벽 3시에 교회에 집합하여 마이애미 공항에서 lay over로 인해
약 4시간 비행기를 기다렸고 콜롬비아에서는 버스를 탄 후에 배로 갈아타고
보카치카 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보카치카로 가는 길은
공중에 비행기, 육지에선 버스, 수상에선 배를 탔습니다.
보카치카에서 사역이 끝나고 산 안테로로 이동하는 길의 거리는 가까웠지만
도로공사로 인해서 차가 막혀서 6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미국처럼 4차선 도로인데 차선 하나를 막아서 3차선이 되는
그런 공사가 아니라 차선이 오직 하나라서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이쪽에서 정지한 상태로 반대편 차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곳이 한 두곳이 아니라 연속해서 있었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렇게 6시간 차속에 갇혀 있으면서 공유에 되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길이 하나이기에 반대편에서 오는 차들과 도로를 공유해야만 했습니다.
초대교인들을 모든 것을 나누고 share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나누는 것에 내가 얼마나 힘쓰고 있는가?
다른 사람의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얼마나 내 일처럼 느끼고 있는가? 라는
내 자신을 향한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도착 못할 것만 같았던 산 안테로에 드디어 도착해서 사역을 하고 있던 중에
선교사님과 현지 수련회 스태프 사이에 miscommunication으로 인해
토요일 스케줄과 일요일이 스케줄이 바뀌어서 점심식사부터 저녁 집회까지
시간이 텅비게 되어 또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이번 선교에서 왜 주님께서 계속해서
나에게 기다림을 주시는지 질문했을 때 예수님의 대답은 “재림”이였습니다.
아마 내가 그동안 나태한 신앙생활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예수께서 돌아오신 다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서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맞이하고 환영할 준비를 하면서 기다리는 것과 아무런 준비없이
그냥 기다리는 것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인스턴트 음식, fast food, 그리고 instant message 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는
현대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 나에게 기다림이나 천천히 라는 단어처럼
낯설고 어색한 단어는 찾기 힘든 것 같습니다.
회사 e-mail이나 사람들에게 연락은 신속하게 답장하는
내가 왜 그 누구 보다도 존귀하시고 간절하시게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는 더디게 반응하는 것일까요?
마지막으로 이번 선교에서 배운 것은 자립이였습니다.
콜롬비아 교회는 그 어느 지역의 교회보다 게릴라 때문에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성장하는 교회라고 선교사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외부에 도움 없이 매주 조금씩 fund raiser를 하면서 동시에 기도에 힘쓰며
천천히 기다리면서 건축해온 점이 나에게 큰 은혜와 도전이 동시에 되었다.
자립이란 단어 자체는 혼자서 스스로 라는 뜻이지만 내가 이번 선교를 통해서
배운 자립은 오직 하나님만이 신실하시고 지혜롭기에
내가 생각하는 타이밍이 아닌 하나님의 때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번 선교에서 가장 많이 불렀던 손잡고 함께 가세 가사로 간증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조금 느리고 어려울지라도
낯설고 두려워 보일지라도
때론 더디고 힘겨울지라도
손잡고 함께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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