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뭔가 보이네...
보여주시는 주님...
침묵.
말로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행동으로 말씀하시는 분.
말로 침묵하시지만 행동으로는 크게 소리지르시는 분.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행동으로도 말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배운다.
쉴 만한 물가.
불평과 원망하지 않고 내려놓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안식이다.
침묵이 없으면 안식도 없다.
하나님 앞에 잠잠하게 있어야 안식을 얻을 수 있다.
판단과 정죄도 하지 않고 불평과 원망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 드리며 견디어 내는 것이 침묵이고 안식이다.
쉼과 고요함.
읽으면 읽을 수록 깊이를 더하게 하는 단어이다.
언제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른다.
어떤일이 일어나던지 간에 선함이고 인자함이다.
그는 선하시고 인자하시기에 그의 행동도 그렇다.
그는 내가 집으로 오기를 기다리신다.
어쩌면 내가 하나님의 집을 그리워 하기에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집은 편하고 화평이 있는 곳이니 말이다.
그가 있는 곳으로 가자구나.
그리고 침묵해야 내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고
주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주위가 시끄러우면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
잡음만 들릴 뿐이다.
잠잠하고 조용해야 들을 수 있다.
대화나 의사소통의 기본은 침묵일 것이다.
그래야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고
내가 내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청해야 발언할 수 있다.
경청과 발언의 뿌리는 침묵에 있다.
내 마음이 분주하거나 내 머리속의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면
귀로는 상대방의 말을 들을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의 마음을 들을 수는 없겠지.
그 사람의 마음을 들으려면 내 마음부터 청결해저야 한다.
내 마음이 깨끗해야 상대방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고 단순하게 받아 드리고
그 사람의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침묵한다는 것은 내 마음을 비움으로써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