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인생은 태풍이 몰아치는 산속 같다.
거센 바람이 불다가 잠깐 햇살이 비치다가
또다시 바람이 불고 비가 퍼붓는 동안
우리는 나비가 되고 새가 되어 어디선가
비바람을 피해야 한다.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 우리는 먼저 버리려 하며,
상대의 아픔을 받아들이기보다 내 아픔을 줄이기 위해
상대를 아프게 하는 삶을 습관처럼 살아왔다.
나비가 아름다운 이유는 아픔이나 버려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기 때문이다.
버려지면 버려지는 것이지 그것을 굳이 두려워 할 이유도 필요도 없기에 자신의 갈 길만을 간다.
선빵을 날리지 말자는 말이다.
내가 먼저 공격해야 공격을 당하지 않기에 먼저 공격을 한다.
그러지 말고 당하면서 살자.
던지면 받고 때리면 맞고 그냥 그렇게 살자.
비폭력적으로 살자는 말이다.
상대를 아프게 하면 나도 아프다.
내가 아프지 않기 위해 상대방을 아프게 하지는 말자.
경험은 경험일 뿐 그것에 대한 판단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신념에 따라 다르다.
경직된 사람일수록 판단이 선명하다.
생각이 부드러운 사람은 표정도 부드럽다.
내 삶을 성공이나 실패로 정하지 말자.
사건은 사건이고 사고는 사고이다.
일어난 일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바라 보자.
날카로운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날카로움은 단단함을 의미하기에 내 마음이 완고해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과 마음이 긍정적이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자.
마음을 열고 나 자신을 배려하며 단정짓지 말자.
뭔가 삶에서 풀리지 않는 일이 있을 때,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과
다른 방향을 향해 삶을 살아보라는 가르침은 경청할 만하다.
습관적이고 무기력하게 살던 삶을 바꿔놓는 유턴은 각성이 일어나는 순간 실행된다.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실천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각성은 스위치이다.
In order to be irreplaceable, you must always be different.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명언이다.
관계가 조금 없을 수도 있겠지만 가능한 최대한 이 말을 많이 언급해야지.
결과를 바꾸고 싶으면 과정을 바꿔야 한다.
Different output necessitates a change in input or process.
다른 것을 시도해야 다른 열매를 맺는 것이다.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용기가 있어야 변화할 수 있다. 용기는 변화의 연료이다.
내가 반성하는 것은 나를 다른 각도, 시점에서 바라 보는 것이다.
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보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변화할 수 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새롭다는 것은 처음을 의미하고 그것은 미지이고 불확실하기에
두렵고 불안하고 초조하게 나를 만든다.
그런 것들을 극복할려면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고통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마주보는 것이다.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뭔가를 버려야 합니다.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두겠습니다.
제 행동을 쉼 없이 지켜보겠습니다.
사악한 말로부터 제 혀를 보호하며
말을 많이 하지 않겠습니다.
걸림없이 살기 위해선 생각의 감옥을 부숴야 한다.
치유란 나 자신의 오염된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다.
일부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중립이 가치에 대한 판단을 중지한 상태라면,
중도는 양극을 품어 안는 상태에서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양쪽의 진실을 다 인정한다는 면에서 그것은 중립과는 다르다.
극단의 방식으로는 온전히 살아갈 수 없다.
대부분의 우리는 분노와 자비,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가지고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성내지 않고 살 수도 없으며, 미워하지 않고 살기도 어렵다.
성냄과 미워함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는 또 부단히 고뇌한다.
마음공부란 바로 그 두 가지 극단을 넘어 중도의 자리에 자신을 놓기 위한 투쟁이며 정진이다.
중도와 중립. 역설이 진리이다.
어느 한 쪽만이 아니라 양쪽 다 봐야 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한쪽만 보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보는 것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 다시 말해 보고 싶은 것과 보고 싶지 않은 것 둘다 보기.
인생엔 단 한번일 것 같은 기회도 오고, 그만큼의 시련도 온다.
기회는 못 알아차려서 놓칠 때가 있지만
시련은 못 알아봐도 피해 가질 않는다.
기지의 세계에 익숙한 나머지 미지의 세계가 두려운 것이다.
척하기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실제로 믿고 있는 것에 저항하기 이다.
거짓 자아.
미워하면 고통스럽고 사랑하면 기쁘다.
깨어 있는 사람은 사랑과 미움도 스스로 결정한다.
I am what I choose to be.
My action, choice, decision makes who I am.
붙여 놓은 이름을 떼버릴 수만 있다면 우리는 편견 없이 사물의 본래 모습과 만나게 될지 모른다.
모든 배움은 사물의 진정한 이름을 배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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