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이든 사랑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요즘에는 내가 찾는 것 보다는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떤 완성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 내가 그것을 찾기만 하면 내 필요가 채워지고
내 고민이 끝날 거라는 조금은 유치하면 조금은 자기편리한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예수님은 씨앗을 팔지 열매를 파시는 분이 아니다 라는 비슷한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그렇다. 예수님은 나에게 소망을 주심으로써 나로 하여금 시작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는 분이지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결론을 내며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말이다.
완성된 것을 나에게 주시기 보다는 미완성된 것을 주심으로써
나로 하여금 거기에 마음을 주고 정을 붙이며 의미를 발견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
정해진 소명을 찾는 다기 보다는 정해지지 않은 소명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인가 보다.
확정된 삶이 아닌 미정이기에 나의 삶에 더욱 더 주님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것이 다 결정 되어 있으면 하나님을 찾을 이유가 없지만
아직도 내 삶 속에서는 정리되지 않고 주님의 손길이 필요한 영역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렇기에 나는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며 그 분이 어떤 분인지 기억한다.
미정이기에 흥임롭기는 하다.
아직 내 안에 잠재력이 남아 있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니까.
미정이 불확실/uncertainty를 동반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들이 나에게는 무한한 기회를 의미하는 것도 사실이다.
구한다는 것은 만들어 가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완성된 것을 나에게 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성해 나아갈 수 있도록 붙잡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고
중간에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에게 관심있는 사람을 찾아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관심 있어 하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나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리고 보여주는 것. 쉽게 말해서 showtime!
내 자신을 보여주자. 김운학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이다.
숨길 것도 도망칠 것도 없다.
부끄러워 할것도 두려워 할 것도 없다는 말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내 입장, 감정을 똑박똑박 전달하자.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에는 하나님 책임.
올바른 질문을 해야 올바른 답을 얻을 수 있다고 했던가.
아래 두개의 질문을 비교해 보자.
"내가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생기게 할까?
Vs.
제가 나에게 관심이 있나?"
어떤 질문을 하냐는 내 생각을 나에게 말해 주는 것이다.
내 생각이 내 운명을 결정하드시
내가 어떤 질문을 하며 사느냐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느냐를 말해 준다.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이다.
Do not wait for good things to happen;
Go out there and make it happen.
관심이 없다는 것은 끝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time to go to work.
나에게 관심이 없으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관심을 갖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관심의 부재는 끝이 아니라 작업의 시작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