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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장난

Resonance




말을 하자.

기도를 하자.


말을해서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화/기도를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대화는 상황의 변화가 목적이 아니라 내 마음의 변화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Self-expression이 인권의 기본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셨던 것이 섭리였던 것 처럼 말이다.

인간과 피조물의 차이 점은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Communication, Conversation, Circulation, etc.

무엇이라 부르던 간에 말은 하면서 사는 것이다.


때론,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참으면서 살기도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한들이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아 

내가 하는 말에 무게와 깊이를 더해 주기 때문이다.

텅 비어서 가벼워 한번 내뱉고 나면 듣고 날아가 버리는 그런 말이 아니라

의미있고 충격을 주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하는 것이 대화나 기도가 되어서는 않 된다.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동기를 부여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대화이고 기도라는 말이다.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고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대화이다.

To converse is to help; to converse is to love.

바울은 오직 사랑에게만 빚지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라는 말로 나에게 오늘 들린다.


그리고 사랑의 대화는 정직한 대화이다.

우선 정직한 대화는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로 이루어진다.

내가 남에게 하고 싶은 말이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과 같은 것.

그것이 정직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대화가 사랑의 대화이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해 줄수 있는 말.

다른 이에게는 하면 나 자신에게는 하지 못하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에게 더욱 더 담대하게 할 수 있는 말이 

바로 정직한 대화이고 사랑의 대화이다.

정직함과 사랑함은 같은 것이라고도 볼수 있겠다.

내가 내 하나님께 정직할 때 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내가 내 이웃에게 정직할 때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며

내가 내 자신에게 정직할 때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즉 대화는 목적은 마음의 파동에 있다.

듣는 이에게 파멸이나 파괴가 아닌 파동 말이다.

위대하고 멋있는 말이 아닌 평범하고 일상적이지만 바른 말.


용기는 인정에서 시작한다.

내 공포나 두려움을 정직하게 받아 드릴 때 변화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처럼

변화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용납이다.

그리고 인정/용납은 내 공포, 연약함을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내 단점을 받아 드리는 자만이 다른이의 단점도 받아 드릴 수 있다.

부인이 약함이고 인정이 강함이다.

사랑이란 약점을 건드는 것이 아니라 생긴 그대로 받아 드리는 것이다.


그대로 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정직이고 사랑이고 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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