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은 인간이 불을 발견하고 다루는 법을 배우면서 시작되었다.
불을 얼마나 잘 다루는 가와 문명은 비례하며 발전했고
그렇게 인간은 진화해 갔다.
인간이 불을 창조하지는 않았지만 불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면서
인간은 삶을 조금 더 편리하고 발전시켜 질 좋은 것들을 누리면서 살수 있겠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부작용이 하나가 생겼다.
인간이 불을 다루면서 갈등과 충돌등이 폭력적인 싸움으로 이어젔고
이것은 결국에는 전쟁으로 진화했다.
불은 인간에게 발전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종말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나의 내면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내 안에도 불이 존재한다.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내가 만들지 않았지만 존재한다.
이것이 때로는 열정이나 motivation이 되어 나에게 에너지를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내가 화를 내고 분노하게 하기도 한다.
Anger <-- Passion --> Love.
Within fire or without fire.
두 불은 by-product를 포함하고 있고 내가 창조하거나 시작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불은 인간에게 유익했던 것 만틈 해롭다.
인간이 불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다스리는 법을 깨닫지 못하면 종말하고 말것이다.
내면의 불을 잘 다스리는 것이 갈등을 푸는 열쇠이다.
나 자신과의 갈등이던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이던지 간에 불을 다스려야한다.
불이 있기에 에너지가 생겨 일도 할 수 있다.
거기서 생긴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사랑할 수도 있다.
간디는 내 안에 있는 열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하고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분노라고 한다.
Love is enthalpy and anger is entropy;
Love is exothermic reaction and anger is endothermic reaction.
다시 말해 사랑은 선택이다.
내가 열이 받는 상황에서 그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고 화를 낼 수도 있다.
사랑과 분노는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평화와 전쟁이 선택의 문제인 것 처럼 말이다.
문명이던 인생이던 불을 다스리는 것은 중요하다.
불은 보호해 줄수도 있지만 나를 홀라당 태워버릴수도 있기 때문이다.
백지 1/ 신달자
무쇠 같은 분노를 삭이려면
돌덩이 같은 한을 삭이려면
그곳에 들어가 보세요
들어가도 들어가도 끝이 없는
바닥도 벽도 없이 확 트인
최초의 자연에 정신을 열어보고 싶다면
백지에 스르르 스며들어서
온몸이 백지가 되는 황홀을 맛보고 싶다면
세상의 먼지를 깨끗하게 씻어
산속 샘물같이 맑아지고 싶다면
표백은 없었지만 시리게 깊은 흰빛
다 받아들이고 다 쏟아내는
첫 발자국에 영원이 밟히고
두 발자국에 과거와 내세가 하나의 길로 열리는
그런 선한 길로 접어들고 싶다면
무게도 냄새도 충돌도 없는
정신의 정신을 만나고 싶다면
훌쩍 백지 위로 뛰어내려 보세요
아무것도 없지만 뭐든 있는
그런 근원의 출발이 손을 이끄는
무작정 따라가도 마음 잡히는
청정한 마음이 기립해 서 있는
소신 밝아 늠름한
가도 가도 목이 마르지 않는 그런 길
'불장난' 카테고리의 다른 글
Impedimenta (0) | 2013.07.31 |
---|---|
Hope: believing in myself. (0) | 2013.07.27 |
No more (0) | 2013.07.22 |
Extinguish Thou My Eyes (0) | 2013.07.11 |
하나비 (0) | 2013.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