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מָ‏ן

상심 [傷心]


들의 노래


아프다

지금은 노을 한 끝도 닿지 말아라

익은 벼 낫질에 밀려

다 떠나가고

정으로 남긴 벼 그루터기마저

파헤쳐진 들의 가슴엔

달빛 한 자락도 아프기만 하구나

뒤따르다 처진 바람 한 자락

어디선가 앓다 날아온 잡새 한마리

그림자만 떨구고 날아가 버릴 때

다 떠나가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들은 눈을 감는다

영롱한 하늘 한 자락 끌어

몸을 덮고 싶지만

속속들이 와 안기는 건

차가운 어둠

메마른 나체로 드러누운

들의 가슴을 덮는 것은

서리뿐이다

서리뿐이다







겨울 노래


언니

사람들은 그것을 무지개라고 해요

일곱 가지 바람 일곱 가지 비 일곱 가지 절망 일곱 가지

희망이라고 해요

그저 생각하는 것 바라보는 거 마음으로 느끼고만 있을

이 땅에서 잡을 수 없는 무지개라고 해요

일곱 가지 상처 일곱 가지 맹목 일곱 가지 실명

일곱 가지 죽음 일곱 가지 부활이라고 해요 언니

하지만 말이고 글이고 이야기라고 할 뿐 이 땅엔 없다고

잠시 보였다 사라지는 무지개라고 해요

별에서 보면 사람도 빛날 것인데 사랑하면 별이 될 것인

데 그런 건 싸악 없다고만 해요

이것은 진짜라고 해요

이것은 진짜라고 무지개가 아니라고

저기 저기 있을 것이라고 있다고 우겨도 웃으려고 해요

안 믿으려 해요

내 마음도 따라서 웃어 버리려고 해요 안 믿으려 한 때가

있어요 언니

그러나 언니는 아알죠

어딘가에 그윽히 그윽히 숨어 있을 새벽별같이 빛나는 

사랑 죽어도 좋을 사랑 하나 있겠지요






늙음에 대하여


그를 애타게 기다린 적이 있었다

스무 살 때는 열 손가락 활활 타는 불꽃 때문에

임종에 가까운 그를 기다렸고

내 나이 농익은 삼십대에는

생살을 좍 찢는 고통 때문에

나는 마술처럼 하얗게 늙고 싶었다


욕망의 잔고는 모두 반납하라

하늘의 벽력 같은 명령이 떨어지면

네 네 엎드리며

있는 피는 모조리 짜 주고 싶었다


피의 속성은 뜨거운 것인지

그 캄캄한 세월 속에도

실수로 흘린 내 피는 놀랍도록 붉었었다


나의 정열을 소각하라 전소하라

말끔히 잿가루도 씻어내려라

미루미 마라


나의 향의 나의 절규는 

전달이 늦었다

20년 내내 전갈을 보냈으나

이제 겨우 떠났다는 소식이 당도했다


이젠 마음을 바꾸려는

그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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