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stantial Expression
두고 가는 것과 빠뜨리는 것은 다르다.
빠트리는 것은 아직 필요가 있지만 실수로 두고 가는 것이고
두고 가는 것은 더 이상 필요가 없기에 버리는 것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아는 것,
나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필요 없는지 아는 것,
이것들은 모두 다 나 자신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현재 나의 모습을 물론 아는 것을 뜻하지만
꼭 거기서 멈추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나의 모습과 내가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까지 아는 것을 포함한다.
그럴려면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이였는지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내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인식할수 있고
그래야만 내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아는 것은 내 과거, 현재, 미래를 다 아는 것이다.
물론 미래를 예측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지는 알수 있다는 말이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내 동기부여는 무엇인지 아는 것을 포함한다.
단순히 현재 내 표면적인 모습만 아는 것을 자기 지식이라 할 수없다.
그것은 일부분일뿐 전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표면에서 시작해서 그 이면에 있는 것까지 알아야 나 자신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내 안에 있는 것을 알아야 나 자신을 아는 것이다.
선물이 중요하지 포장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용물이 나를 정의 하지 겉모습은 그럴 수 없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것을 확실하게 안다면 방황을 적게할 것 같다.
아무리 확실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도 가끔씩 흔들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모르는 상태에서 흔들리는거야 어쩜 당연한 것일테다.
흔들리고 요동하는 것에 너무 마음쓰지 말자.
지금 많이 흔들린다는 것은 나중에 이정도 흔들리는 것에는
미동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기에 힘들지만 참을만 하다.
거친 파도가 일등 향해사를 만든다고 하는 것 처럼
지금 내가 내 자신에 대해 혼돈되고 불확실해 하는 것 처럼
나중에는 내 자신에 대해서 깊이 알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작은 평안을 내 마음 속에서 발견한다.
그리고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현실과 이상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사람마다 각자 자기만의 현실과 이상의 비율을 가지고 산다.
나만의 비율을 찾아가고 조율할주 아는 것이 나를 아는 것이다.
나만의 황금비율을 발견하면 나를 발견할 것이다.
내가 얼마만큼 이상적으로 혹은 현실적으로 살 것인가를 아는 것.
여기서 균형이란 대화를 의미한다.
균형은 반반 혹은 완벽한 5:5 를 의미하지 않는다.
외줄타기를 하다 보면 한쪽이 기울면 중심을 잡기 위해서
체중을 다른 방향을 옮겨 균형을 유지한다.
다시 말해 균형이란 대화처럼 왔다 갔다하는 것이다.
둘 사이에서 왔다 갔다.
Dialogue between idea and reality.
상황에 따라 내 안에 있는 현실을 말을 할 때 이상이 경청하고
반대로 이상이 말을 하면 현실이 들어주기도 하는 것.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나는 어느 쪽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가 결정하는 것이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알려 주는 역활을 하게 된다.
내 안에는 둘다 있는데 그 둘 사이에서 이동하는 나를 인정하기.
양면 다 나니까 어느 한 쪽에만 치우치지 말고 양쪽 다 나라고 인정하기.
현재 나의 모습에서 미래의 나의 모습으로 가려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아는 것.
나 자신을 알아야 '나' 라는 수수께끼의 문이 열리고
더 이상 나 자신이 나에게 신비나 미지의 세계가 아닌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