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clesiates
멕시코를 다녀왔다.
거기서 몇일 머무는 동안 느낀 점을 기록하려고 한다.
지난 달 큐바 선교 이후에 처음으로 나가는 해외 여행이라 더욱 기대되었다.
미국에서 가장 가까우면서 동시에 너무도 먼 나라 멕시코;
생소하고 낯설면서 동시에 가장 가까운 나라.
멕시코의 기후는 캘리포니아와 흡사했다.
강력한 햇살에 낮에는 조금 덥게 느껴지지만 해가 지면 금새 쉬원해 지고 밤에는
춥기까지 하다.
공기는 어느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매워 나빴다.
오늘은 방문한 세곳을 비교하여 같은 결론으로 도달하게된
과정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첫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곳은 Teotihuacan의 태양의 피라미드이다.
태양의 신을 상징하는 곳으로써 아즈텍 문명을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사진에서 볼수 있다시피 피라미드는 거대했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데 10분 정도 걸린것 같다.
인간은 고대나 현대에 상관없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고 한다.
Legacy를 남기고 싶어한다는 말이다.
자신이 죽고 난 후 누군가 나를 기억해 주기 바라며 무언가를 두고 가려고 한다.
아마 피라미드를 이렇게 크게 건설한 이유도 그것일 것이다.
위대한 것을 남겨야 누군가 기억해 주지 작은 것을 남기면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것이기에 최대한 이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한 가장 크게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현대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최대한 큰 집과 비싼 차를 타려고 하는 이유와 마찬가지이다.
비록 이런 것들을 남기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과시하려는 마음은 같다는 말이다.
태양 아래에 새로운 것은 없다는 전도서 말씀을 연상케 한다.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인간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은 항상 같은 것으로 고민하고 있다.
존재의 의미, 실존주의적인 질문, 궁극적으로는 죽음.
인생이 죽음으로 끝난다고 하면 이것만큼 허무한 것이 없을 것이다.
인간은 비참하고 인생은 허무하다.
그렇기에 인간은 각자의 방식으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멕시코 원주민들은 그것을 우상숭배로 해결하려고 했고 태양에게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
피라미드를 짓고 제사를 드렸다.
두번째로 방문한 곳은 멕시코 시티 메트로 폴리탄 대성당이다.
멕시코 시티 중앙에 위치한 조칼로 광장에 있는 성당으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성당은 물론 예수님께 예배 드리는 곳으로 앞에 말한 피라미드 보다는 하나님과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으나 온전하다고는 말할 수도 없는 곳이다.
왜냐하면 아직도 하나님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인간의 노력때문이다.
크고 화려한 건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고 선행을 베푼다고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피라미드 보다 발전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표면적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 아직도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행위라는 요소와 자신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헛된 소망을 붙잡고 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앞에서는 물질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고 흔적을 남기려고 한다면
여기서는 내 행위로 구원받으려는 인간의 마음을 관찰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해도 결국에 나는 자신을 구원조차 할 수 없는 피조물이라는 한계에 부디치게 된다.
마지막은 멕시코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였던 Torre Latinoamericana이다.
1956에 완공되어 남미의 경제 부흥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인간은 늘 마음 한 구석이 텅 비어 있고 그것을 어떻게든지 간에 채우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돈이다.
내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소비하면 난 행복해 질거라 믿는다.
하지만 그것도 앞에 두 경우 처럼 어리석은 생각이다.
내가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다른 사람들 보다 부유한 삶을 산다고 해서
내 삶까지 행복한 것은 아니다.
물론 돈이 많으면 인생이 편해지는 것은 사실이나 편리는 어디까지 편리일 뿐
진리는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모든 것은 올라가는 것은 힘드나 내려오는 것은 쉽다.
큰 것은 고대 피라미드나 현대 건물이나 다 똑같다.
그리고 내려올 때 항상 느끼는 것은 허무함이다.
왜 인간은 이렇게 비참한 존재일 수 밖에 없고
인생은 허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질문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은 모든 질문의 답을 하나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식상한 답이지만 그것이 진리이다.
인간은 그 무엇으로 부터 자유와 화평을 얻을 수 없다.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십자가만이 허무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끝이 아니라 부활로 가는 길이고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죽음처럼 보이나 부활이라는 새생명으로 이어지는 갈이기에 허무할 수 없다.
이 세상에 나의 흔적을 남기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한 영혼이 성장할 수 있는 씨앗이 되어 사라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