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Vin

전화기

金大監 2013. 2. 3. 12:42

파괴된 현대 문명

일그러진 우리들의 사회

깨어진 내 자아







망가지고 깨진다는 것이 순간의 고통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자유와 화평도 담고 있다.

더 이상 불안해 하고 초조해 할 필요가 없기에

실수나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을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기에

성공과 완벽으로 한 발 더 가까이 가게되는 것이다.

한번 실수를 이미 범했기에 두번째 실수가 나를 스트레스 받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십자가의 못 박혀 죽은 자는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로워 지는 것 처럼

넘어짐으로써 배우고 강하지고 그런 것이다.

역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맞다.

두려워 말자.

특히 실수나 잘못 그리고 오류와 같은 그림자 따위는 더욱 더 말이다.

계란이 깨지면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썩은 계란인지 신선한 계란인지 알수 있듯이

이런 것들은 내 자신을 더 깊이 알아 갈 수 있는 기회들이 뿐이다.

물론 살리면 기회고 그렇지 못하면 위기가 오겠고

그 위기를 또 잘 극복하면 새로운 기회가 오는 것 처럼.

내가 실수가 두려운 이유는 실수 자체가 아니라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을 더 두려워 하는 것일 수 도 있겠다.

내가 누구인지...

내 자신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거나

훨씬 더 형편 없을 까봐 그것이 두려운 것이 아닐까...

내 한계라든지 단점, 연약함, 등등...

내가 이런 것들에 가치지는 않을까 가처 두번 다시는 자유롭지 못하지는 않을까

그리고 내 자신이 변화되지 않을까 두려워 하는 것 같다.

내 자신을 아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알면 내 자신을 그 틀에 내가 직접 가둘 것 같아서인 것 같다.

내가 내 자신을 볼 때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것이 두려워서 인것 같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 가둘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인간은 매 순간 다른 존재이고 끝임 없이 변화하기에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인간이 변화지 않는다고 해도 순간은 매 순간 새로운 순간이기에도 그렇고.

내 자신을 아는 것에 대해 두려울 필요가 없다.

화가는 하얀 종이를 두려워 하지 않는 것 처럼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두려워 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을 아는 것을 두려워 해서도 아니고

자신이 몰라도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그것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두려워 안해도 된다.

내가 무슨 말과 행동을 하고

내 속에 무엇이 있는 것을 뱔견하던지 간에 

담대하게 피하지 말고 받아 드리자.

조금한 실수가 내 인생을 통으로 망칠 수 없는 것 처럼

담담하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