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파괴된 현대 문명
일그러진 우리들의 사회
깨어진 내 자아
망가지고 깨진다는 것이 순간의 고통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자유와 화평도 담고 있다.
더 이상 불안해 하고 초조해 할 필요가 없기에
실수나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을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기에
성공과 완벽으로 한 발 더 가까이 가게되는 것이다.
한번 실수를 이미 범했기에 두번째 실수가 나를 스트레스 받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십자가의 못 박혀 죽은 자는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로워 지는 것 처럼
넘어짐으로써 배우고 강하지고 그런 것이다.
역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맞다.
두려워 말자.
특히 실수나 잘못 그리고 오류와 같은 그림자 따위는 더욱 더 말이다.
계란이 깨지면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썩은 계란인지 신선한 계란인지 알수 있듯이
이런 것들은 내 자신을 더 깊이 알아 갈 수 있는 기회들이 뿐이다.
물론 살리면 기회고 그렇지 못하면 위기가 오겠고
그 위기를 또 잘 극복하면 새로운 기회가 오는 것 처럼.
내가 실수가 두려운 이유는 실수 자체가 아니라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을 더 두려워 하는 것일 수 도 있겠다.
내가 누구인지...
내 자신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거나
훨씬 더 형편 없을 까봐 그것이 두려운 것이 아닐까...
내 한계라든지 단점, 연약함, 등등...
내가 이런 것들에 가치지는 않을까 가처 두번 다시는 자유롭지 못하지는 않을까
그리고 내 자신이 변화되지 않을까 두려워 하는 것 같다.
내 자신을 아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알면 내 자신을 그 틀에 내가 직접 가둘 것 같아서인 것 같다.
내가 내 자신을 볼 때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것이 두려워서 인것 같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 가둘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인간은 매 순간 다른 존재이고 끝임 없이 변화하기에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인간이 변화지 않는다고 해도 순간은 매 순간 새로운 순간이기에도 그렇고.
내 자신을 아는 것에 대해 두려울 필요가 없다.
화가는 하얀 종이를 두려워 하지 않는 것 처럼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두려워 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을 아는 것을 두려워 해서도 아니고
자신이 몰라도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그것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두려워 안해도 된다.
내가 무슨 말과 행동을 하고
내 속에 무엇이 있는 것을 뱔견하던지 간에
담대하게 피하지 말고 받아 드리자.
조금한 실수가 내 인생을 통으로 망칠 수 없는 것 처럼
담담하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