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When I passed by you and saw you squirming in your blood, I said to you while you were in your blood,
'Live!' Yes, I said to you while you were in your blood, 'Live!'
"Besides all your abominations and harlotries you did not remember the days of your youth,
when you were naked and bare and squirming in your blood.
Ezekiel 16.6, 22
여기서 핏덩이는 죽어가는 사람을 뜻하는게 아니다.
갓난 아이를 뜻한다.
어미 배속에서 방금 태어난 아이는 핏덩이이다.
그리고 이 아이는 철저하게 방치되었다.
버림 받아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아이를 한 사람이 입양하여 살아만 다오 라고 말했다.
죽지만 말고 오직 살아만 다오.
한 마디의 그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너무나도 간절하여 아무 말도 표현할 수 없고
지금 당장 생각하는 단어는 살으라는 것 뿐이다.
말이라는 것이 꼭 화려해야만 마음이 전달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론 매우 단순한 단어 하나가 그 상황이나 한 사람의 마음을 말해 주기에 충분하다.
갓 태어나서 가장 연약할 때에 죽지만 말고 꼭 살으라.
그랬더니 살아서 배은 망덕한 행위를 그 아이가 한다.
배신과 음행을 했다.
개구리가 올챙이 때 생각 못한다고
조금 컸다고 배가 부르다고 초심을 잃고
자신의 정체성까지 망각한체 인생을 낭비해 버린다.
아이를 입양한 사람이 아이가 성장하여 음행이나 저지르라고 그 아이를 보살폈을까?
그것은 확실하게 아니다.
적어도 그 아이가 선물로 받은 삶을 낭비 하면서 살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될것이라고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만약 그것을 미리 알았다면 그 아이를 그래도 구했을까?
여기서 아이는 나다.
핏덩이인 나를
다 죽어가는 나를
주서와서 키워주고 살려줬더니
이제는 하나님을 떠나 내 맘대로 살려고 한다.
물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실 때
내가 그분과 노예계약이라도 한것 처럼
무조건 순종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선택이다.
그분을 버리는 것도 돌아가는 것도 말이다.
안 보이는 하나님의 인도함과 나의 자유의지가 만나 하나가 될 때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아이를 구했다면
그것은 아마 그 아이가 음행을 저지른 것만을 아신 것이 아니라
음행을 저지른 후에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아셨기에 처음에 입양을 하신 것은 아닐까?
지금 나의 음행하는 모습이 끝이나 완성된 모습은 아니다.
아직도 돌아갈 기회는 있다.
지금 돌아 가자.
하나님께 돌아가자.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일단
살아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