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머물라
I cannot dance upon my Toes—
No Man instructed me—
But oftentimes, among my mind,
A Glee possesseth me,
That had I Ballet knowledge—
Would put itself abroad
In Pirouette to blanch a Troupe—
Or lay a Prima, mad,
And though I had no Gown of Gauze—
No Ringlet, to my Hair,
Nor hopped to Audiences—like Birds,
One Claw upon the Air,
Nor tossed my shape in Eider Balls,
Nor rolled on wheels of snow
Till I was out of sight, in sound,
The House encore me so—
Nor any know I know the Art
I mention—easy—Here—
Nor any Placard boast me—
It's full as Opera—
몇년 만에 듣는 노래인지 모르겠다.
그 동안 적어도 2년 정도는 잊고 살았었다.
내가 섬기는 이유와 목적을 다시 발견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게 살 수 있는 것.
기독교 청년이 기독교 청년으로 살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섬기는 이유이다.
정의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환경을 만들기 전까지 쉬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 청년이 기독교 청년답게 생활한다는 것은 말씀과 기도의 힘을 쓰는 것이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한 영혼이라고 하셨다.
사람은 일꾼이기 전에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지 일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오는 것이지 일하러 오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사역을 위해서 사람을 희생시키지 말자.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교회이지 사역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교회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봉 정도전 선생께서도 혁명을 꿈꾸셨던 이유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이것이였구나...
이제 조금 사역 때문에 영혼을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것 같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자.
있는 그대로 보자는 말이다.
저 사람을 내가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계산하면서 보지 말고
그대로 보자는 말이다.
사람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방법이나 과정이 세련됬다고 해서 결과까지 세련된 것은 아니다.
의도/시작, 과정/중간, 결과/끝 이 세가지 모두가 선해야 선한 것이다.
겉으로 표면적으로 세련된 스타일에 현혹되지 말고 그 뒤에 숨겨진 것들을 파악하고
눈에 보이는 것들만 보지 말고 분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자.
사역이라는 명분 아래 사람을 희생시키지 말자는 말이다.
사람이 먼저고 사역은 나중 문제이다.
그리스도인에게 본질적인 사역은 단 하나이고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이 유일한 사역이다.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만이 양보나 타협할 수 없는 사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