מָ‏ן

기다림

金大監 2012. 12. 30. 07:40

과녁은 
피를 토할 때까지 
예리한 화살을 기다린다. 

까치는 
동쪽 하늘이 뚫어져야 
기별이라도 전해온다. 

자정 넘어 
얼음 계곡에 서성이는 것은 
가슴이 불타고 있음이다. 

남몰래 
황홀하고 슬퍼하는 것은 
그믐달 때문이다.

 

 

주님을 우러러 보는 것을 기다리고 lift up my soul 이라 한다.

Lift up & Give up 과 비슷한 의미가 아닐까?
기다린다는 것은 무언가를 내려놓고 기다리는 것을 의미한다.

포기가 아니라 내가 주님을 신뢰하기에 그 분을 기다리는 것을 의미한다.

인내와 항복은 동의어라 생각된다.

My soul, my everything을 주님께 받친다는 것이 기다린 다는 것이다.

물론 lift up 과 give up이라는 단어나 표현이 같은 의미에서만 가능한 해석이다.

주님은 내가 믿는 분이고 나를 수치스럽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

주님을 수치스럽게 하는 자는 수치스럽게 될 것이고 

주님을 수치스럽게 하지 않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To teach is to show.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다면 보여주어라.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로만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인간은 볼 때 배우는 것이고 보여주는 것이 가르치는 것이다.

To teach is to lead. 여기서 리드란 함께 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단순히 이 길로 쭉 가면 되라고 말 한 후에 나 혼자 가라고 하면

그것이 어찌 가르침이고 인도라 할 수 있는가?

끝까지 나와 함께 하시고 손 붙잡고 걸어가는 것이 인도요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주님을 기다리는 것은 하루 종일이다.

내가 배 고플 때만 밥 생각을 하고 밥 언제 먹나 기다리는 것 처럼 뭔가 아쉬울 때만

찾는 것이 아니라 항상 기다리는 것. All day, Every day.

그리고 그가 주님이 얼마나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지 기억하라고 요청하는 것은

하나님이 잊어서 연상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에게 하는 말이다.

내가 신뢰하는 주 여호와 하나님은 인자하신 분이니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소망을 잃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그분은 꼭 오시는 분이고 나를 사랑하시어 버릴 수 없는 분이시니까.

주님이 당신의 자비를 기억함으로써 나에게도 그의 자비를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You remember that I remember that You are the merciful, wonderful savior.

Passive righteousness.

나를 기억하실 때 나의 행위를 기억하지 마시고 당신의 자비로 기억하여 주십시요.

여기서 어린 것은 나이 어린것도 될 수 있지만 내가 철 없을 때 주님을 알지 못했을 때가 더 정확하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나를 의롭게 해 달라고 호소하는 다윗.

선하시고 정직하시기에 사람들을 혼도 내고 야단도 치시는 분이다.

혼을 내지 않는 사람은 사랑도 없는 사람이다.

물론 무조건 혼을 낸다고 해서 사랑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사랑이라는 의도로 하는 훈계는 아름답다. 

그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죄인이 걷던 길과 다르게 

아름다운 의인의 길로 걷기 시작하여 아름답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걷는 길이 아름답다는 말이다.

심판받은 자가 그 도를 가르칠 수 있다.

먼저 하나님에게 심판 받았기에 그가 얼마나 자비로우시고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인지 다른 이들에게 선포할 수 있다.

인자와 진리는 하나님 안에만 존재한다.

그 외에 다른 곳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다른 곳에서 이런 것들을 찾는 행위는 바보나 하는 짓.

그리고 하나님은 본인이 선택하신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안식은 그 분이 선택하신 길을 걸을 때만 가능하다.

두려워 하는 자에게 비밀을 공유하신다.

하나님을 알고 친한 사람에게 당신이 하신 약속을 보여주시고 지키신다.

친해지는 것이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이다.

앙망은 바람과 흠모.

주님을 바라보고 내 눈이 그분을 향해 있는 것은 그 분을 사모해서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을 바라볼 필요가 없다.

사랑하면 바라보자. 사랑이 바라보는 것인가?

길을 가다가 넘어지거나 헤매는 이유는 한눈을 팔거나 다른 생각을 하여서이다.

내가 한눈을 팔지 않을 때 나의 발이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넘어지는 이유는 내가 주님을 앙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

이어지는 다윗의 신세타령.

물론 내가 내 죄 때문에 고난 받고 힘들어 하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는 이유는 불평과 원망이 아닌 이렇게 힘드니까 

제발 도와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이다. 

 내가 견디어 낼 수 있도록 주님이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Desolate reminds me of desert.

다윗의 내면은 사막처럼 건조하고 텅 빈 상태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단순히 lonely하거나 depress한 정도가 아닌 desolate이라는 단어가 그의 갈망을 잘 표현주고 있다.

내 마음 속에 근심이 커진다. 고민과 걱정은 constant하지 않은 것 같다. 항상 커지거나 작아진다.

내가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내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한다.

내가 잘해서 용서 받을 자격이 되어서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무 힘들고 죽을 것 같아서 

한번만 봐달라고 제발 살려달라고 비굴할 정도로 적날하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다. 

이 고통에서 나를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알기에 죽기 살기로 하나님 한 분만 매달리는 것이다.

간절하고 애절함은 비굴하고 못생겼지만 그런 모습을 보시고 

내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 나를 구원해 주실 때 아름다운 것이다. 

회개가 아름다운 것은 내 모습이 의로워서가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을 놀라운 은혜로 

온전한 의인으로 변화 시키시는 분의 솜씨가 일품이어서이다.

이 세상에서 나를 미워하는 원수는 많고 나를 사랑하는 친구는 적다.

하지만 원수들이 나로 하여금 친구 찾는 일을 멈추게 할 수는 없기에 나는 담대해 지리라.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하지 말게 하소서는 내가 주님을 믿을 터이니 나를 실망시키지 말라는 말이고 

내가 주님을 불어 짖을 때 기도를 들어 주시고 응답해 주시면 

내가 주님의 대문을 두드릴 때 문전박대 하지 말아달라는 말이다.

나를 버리지 말고 함께 해달라는 간절한 더 이상 후퇴할 곳도 갈 곳도 없는 

불쌍한 피조물의 대성통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