מָן
歸鄕
金大監
2012. 12. 10. 12:23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두려워 할 것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원래 내가 당연히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단지 그 곳을 떠난지 너무 오래 되어서 조금 낯선 것이다.
익숙해 지면 두려워 할 것은 사라진다.
적응은 공포라는 독의 해독제라고나 할까.
익숙의 다른 면도 있지만 그것은 나중에 이야기 하는 걸로.
내가 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왜 참 이상하고 어리석게 불편하고 초조해 하는 것일까?
집을 너무 오랬만에 찾아가서 내가 누구인지를 잊거나 망각해서가 아닐까?
너무 오래 비어둔 우리 집...
혹시나 변하지는 않았을까, 나를 잊지는 않았을까.
나를 문전박대하지는 않을까.
거절이 나 자신을 좌절하게 만드는 것인가
many questions, so few answers...
이것 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을 것이다.
나를 위해서 집 주인이 잔치상을 준비해 놓고 나만 오기를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잔치의 주인공이 내가 가도 되는 자리인가 아닌가 하고 참석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모습.
그가 나에게 어떤 분이시면 나는 그분에게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
그리고 그와 나의 관계 형성은 이미 완성되었기에
관계가 이미 온전하다는 점만 기억하고 또 기억하면 되는 것이다.
그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한거나 원하는 것이 없다고 고백하는 다윗.
인간의 욕망/욕심중에 가장 큰 원인중에 하나가 insecurity이다.
내가 이것만 있으면 걱정 없이 불안해 하지고 않고 살 수 있을거라고 자신에게 말하는 것.
다시 말해 나는 이것이 없으면 불행할 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insecurity라는 말이다.
의심도, 걱정도, 공포도 없이 살 수 있는 이유.
즉 부족하거나 원하는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은 더 이상 insecured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Still/quiet waters, 쉴만한 물가.
잠잠하고 조용한 것이 휴식이다.
침묵이 안식이라는 말이다.
분주했던 내 마음, 교만했던 내 눈, 불결했던 내 생각들을 멈추는 것이다.
To come to a complete stop.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면 된다.
그냥 가면 된다.
정죄는 소음과 잡음들이 많지만 정지는 고요하다.
힘들게 사는 삶으로 부터 조금씩 멀어지자는 말인가...
쉴 만한 물가.
잠잠하게 주만을 바라 볼 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알아 갈 때 잠잠하게 주만 바라 볼 수 있는 것인가...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여호와가 나의 목자인지 알고 쉴 만한 물가로 간다는 것은
나의 insecurities 앞에서 잠잠해 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평과 원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고 기쁘게 사는 것이 침묵하는 삶이다.
"죽음의 그늘 골짜기" 는 별것 아니다.
단지 조금 멀리 돌아간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walking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the death" means nothing but taking the detour.
목적지를 생각하면 조금 멀리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 분을 기다리는 것은 매우 쉽고 가벼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 분을 사랑하기에 매우 사랑하기에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 보다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
3시에 어린왕자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2시 부터 행복해 했던 사막 여우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은 매우 쉽지만 그를 잊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
그분도 나를 사랑하기에 나를 만나고 싶어 하시고
나를 향해 지금 달려 오고 계신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늦게 만나는 것이 꼭 거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멀리 돌아가는 것은 조금 더 아름다운 만남을 위한 준비 과정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 기다림이 달콤해 질 수 있다.
내 분수에 넘치게 큰 상을 베푸시고 나를 환영해 주시는 주님.
나를 보고 만났을 때 못 본척하고 스쳐 지나 가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리에 손수 기름으로 바르시는 주님.
나를 잊지도 않으시고 나와 늘 함께 하시는 주님.
나를 부르시는 분은 그런 분이시기에 기다림이 두려움으로 변신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원망과 불평할 것은 없고 오직 찬양과 감사만 할 수 있게 하시는 주님.
내가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집안에 내 방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손수 직접 예비해 주신 그 방안에서 영원히 거하기를 소망합니다.
"Lead me, O Lord, beside the still waters."